세계적인 과학 매체 사이언스(Science)가 “지금까지 관측된 것 중 가장 무겁다고 여겨지는 초대형 블랙홀이 발견됐다”고 보도했다.
이 블랙홀은 지구에서 약 50억 광년 떨어진 은하 중심에 있으며, 무게가 태양의 360억 배에 달하는 ‘괴물’급이다.
연구팀은 기존보다 훨씬 정밀한 측정 방법을 새로 개발해 이 결과를 얻었다.

■ 은하 속 ‘괴물’ 블랙홀
대부분의 은하 중심에는 초대형 블랙홀이 있다.
우리 은하에도 ‘궁수자리 A*’라는 블랙홀이 있는데, 무게는 태양 약 400만 개 정도다.
블랙홀은 빛조차 빠져나올 수 없어서 직접 볼 수 없지만, 주변을 도는 별이나 가스가 얼마나 빠르게 움직이는지 보면 무게를 알 수 있다.
하지만 이런 방식은 가까운 은하에만 적용 가능하다. 15억 광년 이상 떨어진 먼 은하는 별 하나하나의 움직임을 보기 어렵다.
■ 기존 방식의 한계
그래서 천문학자들은 먼 은하의 경우 ‘활동은하핵(AGN)’이라는 현상을 활용한다.
일부 블랙홀은 주변의 가스와 먼지를 빨아들이면서 엄청난 빛을 내는데, 이 빛의 성질과 블랙홀 무게 사이의 관계를 이용해 질량을 추정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방법은 가정이 많아 정확도가 떨어진다.
브라질의 연구자인 카를루스 멜루-카르네이루 박사는 “기존 방식은 실제보다 최대 10배 차이가 날 수 있다”고 말했다.
■ ‘말발굽 은하’ 에서 발견된 힌트
연구팀은 ‘코스믹 홀스슈’라는 거대한 은하를 연구하다가 새로운 단서를 찾았다.
이 은하는 뒤에 있는 더 먼 은하의 빛을 휘어 ‘말발굽’ 모양으로 보이게 하는 ‘중력렌즈’ 현상을 일으킨다.
중력렌즈는 거대한 질량이 시공간을 휘게 만들어 빛의 경로를 바꾸는 현상이다.
연구팀은 원래 이 렌즈 효과를 분석해 은하 안의 ‘암흑물질’ 분포를 연구하려 했는데, 관측 자료 속에서 은하 중심에 엄청난 질량 덩어리가 있는 것이 드러났다.
이게 바로 블랙홀이었다.
■ 허블+초거대망원경으로 속도 측정
정확한 무게를 재기 위해 연구팀은 허블우주망원경과 유럽의 초거대망원경을 동시에 사용했다.
특수 장비로 은하 중심부에서 나오는 빛을 분석해, 그 안의 별과 가스가 얼마나 빠르게 움직이는지 알아냈다.
보통 이렇게 먼 은하는 블랙홀의 영향 범위가 너무 작아 속도 변화를 잡기 어렵지만, 이번 블랙홀은 워낙 무거워서 영향 범위가 훨씬 넓었다.
덕분에 먼 거리에서도 ‘중력의 흔적’을 포착할 수 있었다.
■ 새 계산법으로 나온 결과
연구팀은 중력렌즈 데이터와 별·가스 속도 데이터를 합쳐 컴퓨터로 시뮬레이션을 돌렸다.
그 결과, 블랙홀의 무게는 태양 360억 개에 해당했다.
오차는 ±35%로, 기존 방법보다 훨씬 정확하다.
이는 현재까지 관측된 블랙홀 중 ‘실제 데이터로 확인된 것’ 가운데 가장 무겁다고 볼 수 있다.
■ 다른 연구도 비슷한 방식
사이언스는 또 다른 사례도 전했다.
다른 연구팀이 제임스웹우주망원경(JWST)으로, 중력렌즈에 의해 30배 확대된 먼 은하를 관측한 결과, 중심 블랙홀의 무게가 태양 60억 개로 계산됐다.
프린스턴대 제니 그린 교수는 “아직은 초기 단계지만 이런 연구들이 매우 기대된다”고 말했다.
■ 앞으로 더 많은 발견 가능
이번 연구를 이끈 멜루-카르네이루 박사팀은 앞으로 유럽의 ‘유클리드’ 우주망원경, 중국의 ‘CSST’, 그리고 초거대망원경(ELT) 같은 차세대 장비로 더 많은 블랙홀을 조사할 계획이다.
이렇게 되면 ‘은하의 크기와 블랙홀의 크기가 어떤 관계를 맺고, 시간이 지나면서 어떻게 변했는지’도 밝힐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사이언스 보도처럼, 이번 발견은 단순히 “가장 무거운 블랙홀”을 찾은 것이 아니다.
이제까지는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던 먼 은하의 블랙홀 질량을 정밀하게 측정할 수 있는 새로운 길을 연 것이다.
태양 360억 개 무게의 괴물 블랙홀은, 우주가 어떻게 진화했는지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열쇠가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