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하늘을 올려다보면 끝없는 어둠 속에 수많은 별이 반짝인다. 그러나 우리가 보는 별빛의 대부분은 사실 우리 은하 안에 있는 비교적 가까운 별들이다.
아무리 멀리 보아도 그 빛은 은하 내부에서 오는 것에 불과하다.
하지만 천문학자들은 “보이지 않는 그 너머”를 궁금해했고, 결국 우주의 경계를 향한 도전에 나섰다. 그 결과물이 바로 인류가 남긴 가장 충격적인 사진, ‘딥필드(Deep Field)’다.

참깨보다 작은 하늘 조각에서 드러난 은하의 바다
딥필드란 하늘의 아주 작은 영역을 장시간 촬영해 먼 우주를 관측한 사진을 뜻한다.
그 크기는 손가락 끝으로 집은 참깨보다도 작다. 맨눈으로는 그저 ‘빈 어둠’처럼 보이는 하늘 조각을 망원경에 고정해 며칠, 때로는 몇 주 동안 셔터를 닫지 않고 빛을 모은다.

그 결과 놀라운 광경이 펼쳐진다. 사진 속 점처럼 보이는 것 하나하나가 사실은 수천억 개의 별을 품은 은하다.
허블 우주망원경이 촬영한 첫 딥필드에는 단 한 구역에서만 수천 개의 은하가 담겼다. 이를 전체 하늘에 비유하면, 우주에 존재하는 은하는 최소 수천억 개 이상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빛은 시간을 건너온다
우리가 별빛을 본다는 것은 곧 과거를 보는 일이다.
빛은 초속 30만 km로 움직여 태양에서 출발한 빛이 지구에 도착하는 데만 8분 20초가 걸린다. 따라서 지금 우리가 보는 태양은 실제로는 8분 전의 모습이다.
만약 40광년 떨어진 별을 관측한다면, 그 별빛은 40년 전 출발한 것이고, 수십억 광년 너머의 은하를 본다면 우주가 탄생한 직후의 모습을 관찰하는 셈이다.
그렇기 때문에 딥필드 사진은 단순히 ‘먼 거리’를 기록한 것이 아니라, 우주의 역사와 진화를 담은 과거의 기록이기도 하다.

1995년, 허블 딥필드의 충격
1995년, 천문학자들은 전례 없는 도전을 감행했다. “아무것도 없는 하늘을 10일 동안 찍자”는 계획이었다.
당시로서는 ‘미친 짓’처럼 보였다. 수십억 달러가 투입된 허블 망원경을 빈 하늘에 고정한다는 것은 비상식적인 발상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과는 전 세계를 뒤흔들었다. 아무것도 없어 보이던 하늘에서 수천 개의 은하가 나타난 것이다.
이 사진은 ‘허블 딥필드’라는 이름으로 공개되었고, 천문학 역사에서 가장 충격적인 이미지로 기록되었다. 이후 연구자들은 점 하나하나를 확대 분석하며 우주 초기 은하의 특성과 진화 과정을 추적하기 시작했다.

울트라·익스트림·그리고 제임스웹
허블의 도전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2004년, ‘울트라 딥필드’가 공개됐다.
11일 이상 장노출로 촬영된 이 사진에는 우주가 탄생한 후 불과 4억 년이 지난, 초기 은하들의 빛까지 담겼다. 그중 일부 은하는 작고 푸른 빛을 띠고 있었는데, 이는 별이 막 태어나던 시기의 모습이었다.
2012년에는 기존 자료를 모두 모아 ‘익스트림 딥필드’가 탄생했다. 인류가 본 가장 먼 우주라는 타이틀을 얻게 된 순간이었다.
그리고 2022년, 허블의 뒤를 이은 제임스웹 우주망원경(JWST)이 첫 딥필드를 공개했다. 제임스웹은 가시광선 대신 적외선 영역을 관측해 허블이 볼 수 없던 더 먼 과거를 담아냈다.
이로써 인류는 우주 탄생 직후의 빛을 포착하는 데 성공했다.

왜 적외선인가?
우주가 팽창하면서 멀리 있는 은하일수록 우리로부터 더 빠르게 멀어진다. 이때 발생하는 현상이 바로 ‘적색편이(Redshift)’다. 은하에서 출발한 빛의 파장이 길어지며 가시광선을 넘어 적외선 영역으로 이동한다.
허블은 가시광선과 근적외선을 관측할 수 있었지만,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제임스웹은 아예 중적외선까지 볼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또한 두 망원경 모두 지구 대기권 밖에서 관측한다. 대기가 적외선을 흡수하고 왜곡하기 때문에, 지구 표면에서는 이런 관측이 불가능하다.

딥필드가 던진 의미
딥필드 사진 한 장은 그저 아름다운 우주 풍경을 넘어 우주의 본질을 시각화한 증거다.
우리가 속한 은하는 수천억 개의 은하 중 하나에 불과하며, 각 은하에는 또 수천억 개의 별과 행성이 존재한다. 그중 일부는 생명을 품고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허블 딥필드가 등장하기 전까지 인류는 “우주가 크다”는 사실을 수치로만 이해했다. 그러나 딥필드는 그 개념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현실로 바꿔놓았다.

미래: 더 넓고 더 깊게
천문학자들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곧 발사될 낸시 그레이스 로먼 우주망원경은 허블보다 100배 넓은 시야를 제공한다.
지금까지 딥필드가 바늘구멍 같은 관측이었다면, 로마 망원경은 파노라마 사진처럼 우주를 보여줄 예정이다. 여기에 AI 기술이 접목되어, 관측 중 자동으로 중요한 신호를 골라낼 수 있다.
더 먼 미래에는 적외선, 전파, 심지어 중력파 관측까지 결합한 ‘멀티메신저 딥필드’가 가능해질 전망이다. 이는 단순한 2차원 사진이 아니라, 우주를 입체적으로 재구성한 지도에 가까울 것이다.
결론: 우주의 책 속 한 문장
우주는 두껍고 오래된 책과 같다.
딥필드는 그 책의 가장 오래된 페이지를 펼쳐 보여주는 창이다. 우리가 존재하는 은하는 그 책 속에 불과 한 문장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문장이 있어야만 책이 완성된다.
딥필드의 역사는 아직 시작에 불과하다. 앞으로 인류가 만들어낼 더 깊은 시선은, 우리가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는지를 밝히는 또 다른 열쇠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