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오늘날 반도체·원전·우주항공·AI 분야에서 세계와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된 여정은 결코 짧지 않았다.
한 세기 전만 해도 과학 연구의 주도권은 외세에 있었고, 산업 기반은 극히 제한적이었다. 그러나 광복 이후의 80년은 “없는 것에서 시작해, 없는 기술을 만들어낸” 압축 성장의 기록이었다.

■ 1막: 아무것도 없던 시절, 첫 불씨를 살리다 (1945~1960년대 초)
1945년, 광복은 정치적 독립이었지만 산업적으로는 백지 상태에 가까운 출발이었다.
식민지 시절 일부 기술 인력과 연구 시설이 있었지만 대부분 일본으로 철수하거나 파괴됐다. 전쟁까지 겹치자 산업 기계는 고철이 되었고, 실험실은 먼지 쌓인 책과 깨진 비커만 남았다.
그런 상황에서도 학문과 기술을 되살리려는 움직임은 멈추지 않았다.
1950년대 초, 서울과 부산의 대학 캠퍼스에서는 해외에서 구해 온 헌 교재를 번역해 학생들에게 나눠주고, 부서진 기기를 고쳐 실험 수업을 이어갔다.
당시 한 교수는 녹슨 금속 절단기를 수리하며 “이게 우리나라 과학의 첫 페이지”라고 말했다고 전해진다.
1954년 시작된 ‘미네소타 프로젝트’는 이 꺼져가던 불씨에 바람을 불어넣었다. 미국이 교수 연수, 실험 장비, 교재를 지원해 고등공학 교육이 다시 호흡할 수 있게 됐다.
또한 귀국 학자들이 중심이 되어 기상·천문 관측, 의학 연구 등 기초분야의 토대를 다시 세웠다. 이 시기 국립중앙관상대가 독립적인 기상·천문 체계를 구축한 것은 단순한 관측 복구 이상의 의미를 가졌다.

■ 2막: 산업화의 기계음, 현장에서 배우다 (1960년대~1970년대)
1960년대 들어 정부는 경제개발 계획에 과학기술을 포함시키며 ‘국가 성장의 엔진’으로 규정했다.
과학기술국이 발족하고, 기술진흥 5개년 계획이 수립되었다. 연구소 설립과 인력 양성이 병행되면서 “전문가를 국가가 키운다”는 개념이 자리잡았다.
1970년대는 굴뚝과 용광로의 시대였다.
현대조선소가 울산에서 첫 선박을 건조했고, 포항제철의 거대한 용광로에서는 밤낮없이 불길이 솟았다.
이곳에서 숙련공과 엔지니어들은 ‘국산화’라는 목표 아래 밤을 새웠다. 조선소 도크에 새겨진 첫 용접선, 제철소에서 찍힌 첫 강판은 한국 기술 자립의 상징이었다.
이 시기 축적된 금속·재료·기계공학 역량은 곧 자동차·가전으로 확장됐다. 현대 포니 승용차가 거리를 달리고, 국산 컬러TV가 수출되면서 세계 시장에서 ‘한국도 만든다’는 인식이 퍼지기 시작했다.
당시 일본 언론이 “아시아의 변방에서 기술국가가 자란다”고 평한 것도 이 무렵이었다.
■ 3막: 작은 실리콘에 담은 큰 야망 (1980년대~1990년대)
1980년대에 접어들며 산업의 무게중심은 중화학에서 첨단 전자기술로 옮겨갔다.
세계 시장에서는 반도체가 새로운 ‘산업의 쌀’로 떠오르고 있었고, 한국은 이 분야에서 뒤늦게 출발했지만 단숨에 추격을 시작했다.
1983년, 삼성의 64K D램 개발 성공은 단순한 기술 성과가 아니었다.
“우리가 세계와 싸울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준 사건이었고, 한국 반도체 산업이 본격적으로 국제 경쟁 무대에 진입한 신호탄이었다.
1990년대 들어 디지털 전환이 가속화됐다.
정부는 1994년 정보통신부를 신설하고 전국에 초고속 광케이블망을 깔았다. 1996년에는 세계 최초로 ‘CDMA’ 이동통신을 상용화해, 통신기술 수입국에서 표준 수출국으로 변신했다.
그 결과 2000년대 초, 한국의 초고속인터넷 보급률은 OECD 1위에 올랐고, 전 세계가 ‘IT 코리아’를 주목했다.

■ 4막: 땅을 넘어 하늘로, 그리고 미래 에너지로 (2000년대)
2000년대, 한국은 기술의 영역을 우주와 원자력으로 넓혔다.
2009년, 한국전력 컨소시엄이 UAE 바라카 원전 4기 건설을 수주하면서 원전 설계·시공·운영 능력을 세계에 입증했다.
같은 해 나로호 발사가 이뤄졌고, 비록 1단 로켓은 러시아산이었지만 위성과 발사 운용 능력을 자체 확보하는 계기가 됐다.
에너지 전환의 흐름 속에서 리튬이온 배터리와 연료전지가 상용화되었고, 이는 전기차·친환경 발전 산업의 핵심 기반이 됐다.
한국의 배터리 기업들은 이후 글로벌 전기차 시장에서 핵심 공급자로 자리잡게 된다.

■ 5막: 손바닥 안의 세상과 AI의 물결 (2010년대~현재)
2010년대 초, 한국은 스마트폰 시장에서 세계 정상에 올랐다.
삼성전자는 갤럭시 시리즈로 2012년 출하량 2억 대를 돌파하며 애플을 제쳤고, 반도체·디스플레이·모바일 AP까지 직접 생산하는 ‘완전 수직계열화’를 완성했다.
LG전자는 세계 최초로 대형 OLED TV를 상용화하며 프리미엄 가전의 패러다임을 바꿨다.
최근 10년간 최대 화두는 인공지능이었다.
2019년 발표된 ‘국가 AI 전략’을 기점으로 초거대 언어모델, 메모리 내 처리(PIM) 기반 AI 반도체 등 핵심 기술이 개발됐다.
의료, 제조, 금융, 국방까지 AI가 깊숙이 스며들었고, 이를 뒷받침하는 GPU·HBM 기술 경쟁은 한국 반도체의 초격차 전략과 맞물려 글로벌 영향력을 키웠다.
■ 6막: 앞으로의 80년을 향해
한국의 과학기술사는 ‘무(無)에서 유(有)를 만든’ 드문 사례다.
폐허에서 시작해 중화학, 전자, 정보통신, 에너지, 그리고 AI에 이르기까지, 한국은 늘 새로운 산업 전환점에서 방향키를 잡았다.
다음 80년은 우주탐사, 양자컴퓨팅, 차세대 에너지 등 새로운 전쟁터에서 펼쳐질 것이다.
중요한 것은 기술 그 자체보다, 그 기술을 끌고 갈 사람과 비전을 잃지 않는 일이다.